뭎 — 정처 잃은 발걸음들의 방 03
스페인 당나귀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어느 국내 가구 브랜드의 북 레스트(책 휴식대?)를 보게 되었다. 오면체 삼각기둥을 옆으로 눕혀놓은, 말하자면 박공 지붕 형태의 아주 예리하고 날카로운 마감이었다. 처음엔 책을 북 레스트의 경사면에 기대놓는 건가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놓아도 책이 밑으로 미끄러져 뒤통수를 박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그렇게 되면 책이 아플 것 같았다.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20만원 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모두 품절인 상태였고, 사용 방법이 궁금했기에 찾아봤지만 제품 설명에는 나와 있지 않았다.
설마 나만 모르고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싶어 후기들까지 찾아보기 시작했고, 한 후기에서 책을 살짝 펼쳐서 북 레스트의 뾰족한 모서리 부분에 엎어놓은 사진을 발견했다. 다들 당연하게 생각했을 이 방법을 왜 난 상상도 하지 못했을까... 책도 휴식을 취하려면 읽던 페이지가 어디였던 간에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접혀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 사진을 보는 순간 15세기 스페인 종교재판(이단 심문소)에서 사용했던 고문 기구, 스페인 당나귀가 생각났다. 아주 귀여운 이름이지만 정말 단순하고 무시무시한 고문 도구로 사용법을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고 고통스럽다. 저렇게 북 레스트의 모서리에 얹힌 상태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무게와 중력에 의해 조금씩 제본된 연결부가 늘어나고 찢어질 텐데, 북 레스트에서 책은 휴식이 아닌 고문을 받는 것은 아닐까(그것도 밤새도록)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책도 사람 못지않게 항상 어떤 방식으로든 재판을 받아 왔던 것 같다. 대중이나 전문 평론가, 책 마니아들을 상대로, 그리고 국가 이념에 의해서도 늘 그랬다. 그렇게 재판받은 책들은 죽거나, 살아남는다. 죽은 책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딘가에서 고문받다가, 혹은 처형장에서 불태워지거나 찢기고 버려졌을까. 그렇다면 살아남은 책들은? 계속해서 삶을 이어갔을까?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책들은 스페인 당나귀와 북 레스트에 올랐고 앞으로도 오를 것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기를 좋아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들을 한쪽으로 정확히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할 테니까. 물론 스페인 당나귀와 북 레스트를 디자인한 사람은 당연히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휴식이 고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끝없이 앞으로만 걸어 나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한 번 더 고민할 틈을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는 걸을 때 왼발 다음에 무조건 오른발을 디디게 되는데, 이 루틴을 반복하며 정처 없이 떠돌다 보면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계속해서 걷다 보면 끝은 날까?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선택하고 판단하며 나누고 가르는 것 말고 그 어느 경계에서 계속해서 헤매는 것은 불가능할까? 쐐기가 박힌 삼각 목마 위에 앉아 끝없는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잠깐 해본다. ‘발목에 무거운 추를 묶는다면 시간은 더 빨리 흐를 것이고, 삶은 금방 지나갈 거야.’ 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다. 중력은 몸을 점점 늘어뜨려 시간을 단축시켜 주겠지.

끝없는 재판과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문제, 그러니까 삶은 너무 복잡하고 알 수 없어서 기이하지만, 한편으론 매우 단순명료하다. 어릴 때부터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일 앞에서 항상 숨이 막히곤 했는데, 혹시 하나의 잣대로 나누려고만 하는 세상의 이분법적 단순함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이단이냐 이단이 아니냐, 죽느냐 사느냐. 결국 삶의 알 수 없는 모든 미스터리들은 단순함에 묻히고 말 것이다. 살아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 말이다.
스페인 당나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북 레스트를 구매한 사람들은 이제 집에서도 쉽고 간단하게 책을 심판할 수 있게 되었다.

뭎 Mu:p @_mu_p_
퍼포먼스의 속성과 연결되는 형식적 고민으로부터 현실과 끊임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며, 소외되고 배제되며 계속해서 방향을 잃어버리는 가장자리의 감수성을 촘촘하게 조직된 시간과 공간으로 풀어낸다. 2인 콜렉티브로 활동하면서 엠유피 건축사사무소, 바(bar) 버틀러와포스터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