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 castle — 사람들은 힙합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쇼미를 좋아하는 거임

West castle — 사람들은 힙합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쇼미를 좋아하는 거임

아마 <쇼미더머니>를 자주 보았던 독자라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힙합이 아니라 쇼미다."라는 문장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한국 힙합은 <쇼미더머니>에게 생태계를 아웃소싱하며 많은 돈과 인지도를 얻었지만 10년 조금 넘는 세월 동안 구축한 인프라를 잃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이 <쇼미더머니> 초창기 한국 힙합 리스너들의 메인 키배소재였다. 당시 힙합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이는, “사람들은 정말 힙합을 좋아하는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심히 쌈박질을 했다는 뜻과 같다.

힙합 팬의 관점에서 <쇼미더머니>는 칭찬하려면 한도 끝도 없이 칭찬할 수 있고, 비판하라면 가루가 되도록 깔 수 있는 IP다. 그런데 이런 일장일단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가 있다. 3년 만에 쇼미가 돌아왔으니 이제 국힙은 다시 쇼미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걸까?

(출처: 에펨코리아 힙합 게시판의 댓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섣부른 판단이다. 일단 <쇼미더머니>는 돈을 벌 수 있는 국힙의 유일한 창구가 아니게 됐다. 2010년대 중반 이전의 래퍼에게 선택지는 쇼미더머니가 아니면 홍대뿐이었다. 그러나 요즘 래퍼들은 SNS라는 선택지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입술에 춘장립 바르고 릴스 찍던 몰리얌은 대구힙합페스티벌 등의 무대에 오르며 온라인 바이럴을 오프라인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폴로다레드 또한 챌린지 기반의 바이럴 마케팅에 힘을 주면서 틱톡 바이럴 차트에 오르는 등 SNS를 통해 인기를 얻는 뮤지션이 하나둘 늘어나는 추세다.

리스너들의 소비 패턴에서도 변화가 느껴진다. 팟캐스트 <통통배>를 발행하는 하키포키 스튜디오의 영상은 큰 편집 기술이나 장비가 들어가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때깔 좋은 영상"이 취향보다 더 중요한 소비 동기였다면 <통통배>는 진작 도태되어야 했다. 그러나 무료로 공개된 분량의 팟캐스트 조회수는  대부분이 구독자 수를 상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만약 래퍼가 되었다면, 당신의 선택은?)

 

특히 26화 게스트인 주호민의 케이스는 주목할 만하다. 시청자가 직접 섭외한 게스트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통통배>와 상의 없이 콜드메일부터 썸네일 시안까지 직접 작성하여 주호민 측에 메일로 발송했고, 섭외에 성공했다. 내 취향에 딱 맞는 콘텐츠를 발행하는 곳에 순도 100% 재미를 위한 무급 노동까지도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출처: 하키포키 스튜디오)

 

청취자의 취향이 세분화 된 만큼 힙합 음악 자체도 더욱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다. 일단 요즘 힙합 좀 듣는다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디지코어, 레이지 같은 신규 장르들이 부상했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존재감을 뽐낸 [K-FLIP+]나 에피의 [pullup to busan 4 morE hypEr summEr it's gonna bE a fuckin moviE]같은 음악이 그러하다. 하이퍼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는 장르 뿐만 아니라 영국발 장르를 파고내려가거나 옛 스타일을 재해석하는 등 다양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은 자기 취향을 더 딥하게 팔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힙합 리스너들은 전부 자기 취향을 찾아서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쇼미더머니 12>에 나온 곡은 현재 힙합이 보여주는 여러 움직임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쇼미에서 나온 곡이 전국을 뒤덮고, 리스너들이 좋든 싫든 금요일 밤에 엠넷을 켜던 10년 전과는 다른 시장이 되었다는 말이다.


(한동안 한국 힙합을 팔로우업 하지 않았다면, 정말 당신이 알던 한국 힙합이 아닐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이제 <쇼미더머니>는 한국 힙합의 중심이 아니다. 확고한 자기 색깔을 가진 소규모 채널이 점차 늘고 있고, 리스너들은 내 취향에 꼭 맞는 콘텐츠를 발행하는 채널에 모이고 있으며,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음악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쇼미더머니>가 아예 망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IP가 가진 특유의 매력이 있으므로 이를 중심으로 팬들이 결집할 가능성이 높다. bnt 뉴스에서 발행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쇼미더머니 12> 최종회의 티빙 실시간 점유율은 92.1%까지 치솟았고, <야차의 세계>를 포함하면 두 프로그램의 유료 구독 기여도가 11번째 시즌 대비 약 2.4배 높은 수준이었다. 이는 3년 만에 돌아온 IP라는 화제성의 차원에서도 볼 수 있지만, 시선을 약간 옮기면 여전히 <쇼미더머니>라는 IP가 전달하는 감성을 좋아하는 팬들이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취향 중심 소비라는 패턴이 점점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 12> 이후 한국힙합의 모습은 쇼미더머니가 없어졌던 지난 3년간의 모습과는 또 다를 것이다. 일단 더욱 세분화된 청취자의 취향이 한국 힙합의 지형도를 다시 그리게 될 것이다. <쇼미더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2010년대보다 다양한 창구에서 리스너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나 <쇼미더머니>가 가진 막대한 자본에서 나오는 넓은 커버리지라는 장점은 다양한 창구가 생겼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여전히 <쇼미더머니>를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쇼미더머니>가 존속한다면 힙합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입덕창구가 되어줄 가능성이 높다. 한국 힙합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게 되는 것은 보고 있으면 지루하지 않은 특유의 역동성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으로 글을 마친다. 

West Castle @west___castle

현직 음악 오타쿠. 벅스 기준으로 알앤비/소울, 록/메탈, 포크/어쿠스틱, 재즈, 힙합이 붙은 모든 한국 음악을 매주 모니터링한다. 
NUGS MAG의 에디터이자 HAUS OF MATTERS의 필진이고, West Castle이라는 이름의 유튜브를 운영하며 음악과 관련해서 본인이 느낀 것을 풀어놓고 있다.